빅리그 무대를 누비다 KBO리그에서 은퇴한 한국 야구의 아이콘, 그리고 KBO리그에서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고 다시 메이저리그 콜업을 꿈꾸며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외국인 투수.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는 듯한 두 선수의 최근 소식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먼저 들려온 건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낭보였다. 현재 SSG 랜더스 구단주 보좌역을 맡고 있는 43세의 추신수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MLB) 명예의 전당 입회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가 18일(한국시각) 발표한 2026년 명예의 전당 투표 명단에는 기존 후보 15명과 함께 추신수를 포함한 12명의 뉴페이스가 등장했다.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 자체가 아무나 넘볼 수 없는 성역이다. 빅리그에서 무려 10시즌 이상을 버텨야 하고, 은퇴 후 5년이 지나거나 메이저리그에서 5년 이상 활동하지 않아야 한다. 추신수는 2024시즌을 끝으로 한국에서 은퇴했지만,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는 2020년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이 마지막이었기에 이번 심사 대상에 무사히 포함될 수 있었다.
이 명단에 진입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한국 야구를 빛낸 선배들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시아 출신 최다승인 124승(98패)을 거둔 ‘코리안 특급’ 박찬호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두 개나 끼고 있는 김병현조차 BBWAA의 깐깐한 사전 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추신수는 달랐다. 2005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데뷔해 클리블랜드, 신시내티, 텍사스를 거치며 16시즌 동안 통산 1652경기에 출전, 타율 0.275에 218홈런, 782타점, 157도루, 출루율 0.377이라는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세 차례의 20홈런-20도루 클럽 가입과 2018년 올스타 선정 등, 아시아 타자를 향한 현지의 편견을 완벽하게 깬 그의 커리어는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충분했다.
물론 냉정하게 말해 추신수가 단번에 명예의 전당에 직행할 확률은 높지 않다. 아시아 선수 중 쿠퍼스타운에 입성한 이는 올해 1월 무려 99.75%라는 경이로운 득표율을 기록한 스즈키 이치로가 유일하다. 노모 히데오(1.1%)나 마쓰이 히데키(0.9%) 같은 걸출한 일본 스타들도 5% 득표의 벽을 넘지 못해 단 한 번 만에 후보 자격을 잃고 짐을 싸야 했다. 10년 이상 경력을 지닌 BBWAA 기자단 투표에서 75% 이상의 찬성을 얻는 최종 목표는 차치하더라도, 당장 다음 투표까지 10년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득표율 5%’ 확보가 추신수의 당면 과제가 될 것이다. 투표 결과는 내년 1월 21일에 판가름 난다.
추신수가 화려했던 빅리그 시절을 뒤로하고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이, 지구 반대편 미국 마이너리그에서는 KBO 팬들에게 낯익은 얼굴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바로 지난해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10승을 거뒀던 좌완 투수 터커 데이비슨이다.
현재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트리플A 팀인 리하이밸리 아이언피그스 소속인 데이비슨은 17일(한국시각)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 코카콜라 파크에서 열린 우스터 레드삭스(보스턴 산하)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성적은 4⅔이닝 7피안타(1피홈런) 4볼넷 4탈삼진 3실점. 매 이닝 출루를 허용하며 살얼음판 승부를 이어간 셈이다.
출발부터 험난했다. 1회 1사 후 2루타를 맞았지만 땅볼과 삼진으로 겨우 불을 껐고, 2회는 무실점으로 넘겼으나 결국 3회에 첫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1사 후 앤서니 시글에게 내준 볼넷이 화근이었다. 크리스천 캠벨을 땅볼로 처리하며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미키 로메로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았다. 이후 4회까지는 추가 실점을 억제하며 선발투수로서의 끈기를 보여줬지만, 5회의 고비를 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팀이 3-1로 앞선 상황에서 솔로 홈런을 얻어맞더니, 이어진 1사 1, 3루 위기에서 상대의 이중 도루에 대처하지 못하고 3-3 동점을 헌납했다. 캠벨을 삼진으로 솎아내며 2사를 만들었음에도 로메로에게 다시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고, 결국 벤치는 지체 없이 투수 교체를 단행했다.
데이비슨의 최근 행보를 보면 프로의 세계가 얼마나 냉혹한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지난해 롯데에서 22경기에 나서 10승 5패 평균자책점 3.65라는 준수한 성적을 냈음에도 재계약에 실패했고, 이후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올해 1월 필라델피아와 다시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재입성을 노리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과거 롯데 시절 “한국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살이 5~10파운드(약 2.3~4.5kg)나 쪘다”며 남다른 한국 사랑을 과시했던 유쾌한 투수이기에 그의 험난한 빅리그 재도전기가 더욱 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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